
BHMerchant라는 해외 투자은행 소속이라는 담당자가 투자를 권하며 수십 쪽짜리 영문 계약서를 보내왔습니다. 마지막 장에는 해외 법인의 직인과 대표 서명, 공증을 받았다는 표시까지 있습니다. 영어로 된 정식 계약서를 받고 나니, 국내의 수상한 투자 권유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영문 계약서와 해외 직인은 신뢰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의 확인을 어렵게 만드는 장치일 수 있습니다. 영문 문서가 왜 함정이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정리했습니다.
영문 계약서는 '읽지 않을 것'을 노립니다
수십 쪽의 영문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투자자는 많지 않습니다. 사칭 조직은 바로 이 점을 노립니다. 계약서의 양과 형식만으로 신뢰를 주고, 실제 내용은 확인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항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손실에 대해 회사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 분쟁이 생기면 해외 법원이나 해외 중재 기관에서만 다툴 수 있다는 조항, 출금 시 높은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조항 등이 대표적입니다. 나중에 출금을 요구하면 이 조항들을 근거로 추가 입금을 요구하거나 책임을 피하려 합니다.
해외 직인과 서명은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해외 법인의 직인이나 대표 서명은 국내 투자자에게 낯설기 때문에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사칭 조직은 이런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어 붙입니다. 공증을 받았다는 표시나 국제 인증을 받았다는 문구, 해외 법인 설립 증명서처럼 보이는 서류도 함께 보내 신뢰를 높입니다.
이런 문서가 진짜인지 확인하려면, 문서에 적힌 정보가 아니라 독립적인 경로로 확인해야 합니다. 많은 나라가 법인 등록 정보를 공개된 조회 시스템으로 제공하고 있어, 회사 이름과 등록번호, 주소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공증을 받았다면 공증한 기관에 직접 사실을 문의할 수도 있습니다.
계약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세요
영문 계약서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계약 상대방입니다. 계약서에 적힌 회사 이름이 담당자가 말한 회사와 같은지, 실제 그 회사의 공식 법인명과 일치하는지 비교해 보세요. 이름이 미묘하게 다르거나, 전혀 다른 나라에 등록된 별개의 회사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투자금을 받는 계좌의 명의도 계약서의 상대방과 일치해야 합니다. 해외 회사와 계약했다면서 국내 개인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한다면, 계약서는 형식에 불과합니다.
해외 관할 조항이 있어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약서에 해외 법원에서만 다툴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고 해서 국내에서 대응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속여서 맺은 계약이라면 그 계약 자체를 취소할 수 있고, 사기는 계약 조항과 관계없이 국내 수사기관이 수사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거주하는 개인 투자자를 상대로 국내에서 권유하고 국내 계좌로 돈을 받았다면, 국내 법원에서 다툴 수 있는 길도 열려 있습니다. 계약서의 조항만 보고 미리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약서는 오히려 증거가 됩니다
받은 영문 계약서와 첨부 서류는 원본 파일 그대로 보관하세요. 위조된 직인과 서명, 실제와 다른 회사 정보는 사기를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계약서를 보내온 이메일이나 메신저 기록, 송금 내역과 함께 정리해 신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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